[백연(白煙)의 두얼굴④] 백연 사라진 동두천, 시민 삶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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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白煙)의 두얼굴④] 백연 사라진 동두천, 시민 삶이 달라졌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12.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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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白煙)의 두얼굴④] 백연저감 첫 시행 동두천 사례 분석
"정부·경기도 설득, 4년간 60억 투입... 全 공장에 저감장치"
백연 사라지자 민원 無... 근로자들 "공기 상쾌해졌다" 환호
동두천시 "백연저감은 사람 목숨 살리는 일... 정부 지원 확대해야"

[편집자 주]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백연(白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연은 직역을 하면 ‘하얀 연기’이다. 순백의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화된 연기’, ‘무해한 수증기’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백연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오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최근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백연 때문에 주민들이 ‘집단 암’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의 하얀 연기에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

취재 결과 국민들의 이런 바람이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신뢰할만한 ‘백연 측정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원인 중 하나로 떠오른 ‘백연’의 두 얼굴을 <시장경제>가 심층 취재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경기 동두천산업단지에는 ‘글로벌 섬유·가죽·패션 산업특구’가 있다. 국제 패션박람회, 신진 패션디자이너 육성 등의 계획을 갖고 있을 정도로 국내 섬유염색 산업을 대표하는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기북부지역 환경을 해치는 오염원이란 지적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섬유염색 공장들이 기름(油) 성분의 백연(白煙)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이들 공장에서 내뿜는 백연이 사라질 전망이다. 동두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백연저감사업’이 곧 완료되기 때문이다. ‘백연저감사업’은 전국 환경업계가 주시하고 있는 사업이다. 동두천시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백연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시내 소재 모든 공장에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전국 자치단체에 미칠 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백연저감사업의 전국적 확산 여부는 동두천시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양주 등 경기북부 지역에는 섬유염색 공장이 많다. 그중 동두천시에는 피혁염색공장이 밀집해 있다. 악취와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은 이곳 주민들은 피혁염색공장에서 내뿜는 ‘백연’을 오염원으로 지목했다. 특히, 백연에 직접 노출돼 있는 공장 근로자들은 당국에 대책 마련을 호소해 왔다. 

최용덕 동두천시장은 올해 신년인사에서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이를 위해 산업단지 섬유염색사업장에 백연방지시설을 모두 설치해 악취로부터 고통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백연저감을 동두천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꼽았다.     

동두천시는 공장에서 내뿜는 백연을 분석해, 기름이 포함된 유(油)증기가 주성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혁염색공장에서 나오는 백연이 유증기인 이유는 섬유를 부드럽게 말리는 과정에서 가스와 유연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염색한 섬유는 응고되는데, 유연제를 넣어 다시 부드럽게 만든다. 유연제로 젖은 섬유는 가스를 활용해 말린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유연제가 가스와 함께 기화되고, 유증기가 백연의 형태로 배출된다. 

백연저감사업 개선 전(왼쪽)후. 사진=동두천시
백연저감사업 개선 전(왼쪽)후. 사진=동두천시

동두천시는 2015년 한국환경공단이 '백연저감시설 보조금사업'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시에 따르면 시범사업 당시 기업들은 백연저감기술에 대한 각종 우려와 부담으로 장비 설치를 꺼려했다. 공장들이 영세해 1억원이 넘는 자부담금을 지불하기에는 부담이 매우 컸고, 자칫 시설 고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굴뚝이 3~4개씩 있고, 공장마다 구조가 달라 단순한 제품 구매 보조금으로 생각하고 예산을 편성했다간 추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세금만 잡아먹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시 내부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동두천시는 확신을 가지고 밀어 붙였다. 시 관계자는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니 백연저감장치를 1개만 성공시켜 보자”는 신념 아래 기업들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S사가 결단을 내렸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동두천시에 따르면 저감장치 설치 직후 백연의 모습은 종적을 감췄고, 공장 고장 등 민원도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근로자들 사이에서 ‘공장이 상쾌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이 안착하자 동두천시는 간담회, 사업설명회를 개최했고, 동종 기업들도 백연저감장치를 설치하겠다며 문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사업을 위해선 최소 1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했다. 동두천시 같은 작은 지자체가 보조금 사업으로 10억원 이상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업 성과를 확신한 동두천시는 경기도에 지원을 요청했고, 도는 주민 민원 해결과 근로자 안전, 기업 경영 안정화라는 대원칙 아래 동두천시에 백연저감장치 지원 예산을 배정했다. 이후 동두천시는 2016년 16억원, 2017년 17억원, 2018년 10억원의 예산을 백연저감사업(경기도 30%, 동두천시 20%, 자부담 50%)에 투입했다. 올해는 경기도와 함께 환경부를 설득해 백연저감사업 예산 17억원(환경부 50%, 경기도 20%, 동두천시 20%, 자부담 10%)을 확보했다. 중앙정부가 예산 집행에 나서면서 기업 부담은 대폭 줄었다. 

경기도와 동두천시는 후속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경기도와 동두천시가 공동 출연한 ‘북부환경기술센터’는 백연저감장치 정상 작동 여부를 모니터링 하는 등 사업 고도화에 초점을 맞춰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동두천시 환경보호과 임지환 대기관리팀장은 “백연저감장치는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며 "대기환경 보호와 주민 건강은 물론이고 공장 재산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감시설 구축에 억 단위의 많은 비용이 들어가 자치단체만으론 사업 시행이 어렵다"며 국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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